2020/11/30

화・꾸짖음 그리고 후회 [스스로 찾는 아빠 훈육의 정답]

유아기 훈육 (3)

공주 놀이, 엘사 드레스 입고 겨울왕국 흉내 내기, 엉거주춤 니쥬 언니들 따라 춤추기.
이따금 그 놀이에 초대되기도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은 혼자서 노는 방법을 터득해 손이 덜 가게 된 아빠딸. (과거와 비교했을 때)


물론 내가 보기엔 별일 아닌 걸로 찡찡거릴 때도 아직 있으나, 많은 지혜가 생기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늘어가는 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예쁜 꽃밭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아직 덜 컸어요. 다섯 살밖에 안됐거든요.

지금은 꽃밭에 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위험한 것이 뭔지 인식하지 못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과 해도 되는 행동 구분이 잘 안 되던, 흙밭 같은 육아 시기가 있었습니다.


일거수일투족 보고 있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걱정되고, 왜 저런 행동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음에 마치 아이와 전쟁을 하는 듯한 긴장감 가득한 나날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전쟁의 상대는 아이가 아닌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습니다.

때론 '꾸짖는다'는 명목으로 '화'낼 타이밍을 재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우유 준비를 혼자 하고 싶어 하는 아이를 보며 뼈와 근육, 신경의 아름다운 조화로 이루어진 인간의 움직임이 반복된 훈련을 통해 정교해져 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하지는 못 할망정, 우유를 쏟거나 흘리면 버럭 큰 소리를 내버리고, 갑작스러운 큰 소리로 깜짝 놀란 아이 모습에 '조심하라고 몇 번이나 아빠가 말했지?' 한마디로 방금 친 큰 소리의 명분을 찾는 훈육 아닌 훈육.


그리고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아직 다섯 살이라서 조금 섬세하지 못했을 뿐인데' 하는 마음과 함께 밀려드는 죄책감에 버럭 한 것을 후회하는 반복.


육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무작정 화만 내면 안 되고, 잘 꾸짖어야 한다.'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압니다.
잘 이해했지만, 난 잘하지 못했습니다. 태어날 예정인 둘째에게도 만점짜리 아빠가 될 자신은 없습니다.

유아기 훈육 (2)

'화', '꾸짖음'의 차이

하지만 욕심은 있습니다. 좋은 육아에 대한 욕심 말입니다. 둘째에게는 첫째 때보다 더 잘하고 싶습니다. 물론, 첫째에게도 그동안 해왔던 육아보다 더 좋은 육아를 앞으로 해주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되고 스스로 깨닫고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화 -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분노를 표현해 감정을 풀어 버리는 것
꾸짖음 - 나쁜 상황에 부닥치지 않도록 하는 것임을 아이가 이해하게 하는 것

전자는 수 분 후에는 후회가 막심하겠지만 그 순간만은 내 속이 풀리게 될 '나를 위한 것',
후자는 앞으로도 몇 번씩 똑같은 주의를 줘야 할 답답한 상황에 맞닥뜨리긴 하겠지만, 언젠가 그 상황을 전적으로 이해하게 될 '아이를 위한 것'으로 나눠지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이가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을 때 내가 행할 수 있는 위 두 가지 선택에 따른 공통점은 '아이가 하던 행동 멈춘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기에 경험에 미루어 짐작건대 아이가 느끼고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고 봅니다.


화를 낸다면 하던 행동을 당장은 멈추겠지만, 본질적으로는 방금 행동이 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는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빠의 위압감에 두려움만 가질 테죠.


똑같은 상황이 찾아왔을 때 같은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훈육 방법이 옳았다기보다는 단지 아빠한테 혼나는 게 무서워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왜 혼났는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속에는 두 가지 생각이 공존할 겁니다.


'하고 싶다!! 그런데 하면 아빠가 또 무섭게 소리 지르겠지?'
그런 고민이 겉으로도 드러납니다.

눈치 보기

몸소 경험한 것을 이야기해볼까요?
식사를 마치고 습관처럼 단 것을 찾곤 했습니다. 걱정될 정도로요.
지금보다도 어려서 아직 말도 조리 있게 하지 못 하던 때, 밥 다 먹고 항상 한다는 말이 '잘 먹었습니다'가 아닌 '디저트!!'일 정도였으니까요.


하루는 간식 달라고 보채는 모습에 크게 혼낸 적이 있습니다. 그날따라 그냥 기분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감정적이었던 것이죠. 왜 단것을 매일 많이 먹으면 안되는 것인지 설명해주기보다는, 윽박지르고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 것이 표현의 전부였습니다. 내 기분에 따라서.


그날 이후로 간식을 찾기 전에 내 눈치를 살살 보는 딸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을 때는 절대 아빠에게 간식을 찾지 않고 엄마에게 몰래 소곤소곤 말합니다.


왜 단 걸 많이 안 먹었으면 하는지 아빠의 마음은 전달되지 않은 채,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딸의 모습을 보며 내 행동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이후 무턱대고 화냈던 것을 사과하고, 단것을 지나치게 먹었을 때의 해악을 몇 번이고 꾸준히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됐냐구요?
'딸! 왜 단것만 많이 먹으면 안 되지?'
라고 물으면
'단 거 많이 먹으면 당뇨병 걸릴 수도 있고, 그럼 병원가서 주사맞고 ~'... 주절주절.
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 )

잘 꾸짖는다는 것에 대한 고민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적이지 않아야 할 것.


그걸 기본 전제로 아이가 스스로 상황을 이해할 때까지 지속해서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복된 훈련을 통해 마침내 우유를 쏟지 않고 컵에 따를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오는 것처럼.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감상적으로 설명해주는 방법도 효과적이었습니다.

'이렇게 계속하다가 만약에 네가 다쳐서 상처 나고 그러면 아빠랑 엄마는 많이 슬프겠지? 그럼 눈물도 많이 날 것 같아'라는 설명에 비교적 간단히 납득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아들이 아닌 타인에게 감정 이입을 잘한다는 여자아이라서 더 효과가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아기 훈육 (4)

'꾸짖음'도 정답은 아니었나?

여기까지 오니 '꾸짖다'는 말보다도 더 어울리는 말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다른 정답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지금 상황에 대한 정보를 가르쳐주고, 아빠의 진심을 '전한다'
"마음의 전달"

내가 내린 정답은 '화'도 '꾸짖음'도 아닌 '마음의 전달'입니다.


그러나!!
정답을 발견했지만 앞서 했던 말처럼, 여전히 자신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말처럼 쉬우면 지구상에 육아로 지친 부모란 존재하지 않겠죠 : )


아마도 몇 번이고 버럭 아이를 놀라게 할 일이 생길 것입니다. 어쩌면 그게 당장 오늘 저녁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습관을 하나 들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반찬 투정이라도 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싫은 그런 상황이 찾아오면 일단 심호흡을 크게 합니다.
조르지뉴의 페널티킥 마냥 평소라면 버럭버럭했을 타이밍을 늦춰버리는 것이죠.
심호흡 덕분인지 몰라도 마음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것도 부족하다 싶으면 일부러 그 자리를 떠나 화장실이라도 다녀옵니다.
잠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돌아온 후에는 상황이 진정되어 있습니다. 지금 화내면 왠지 뒤끝 있는 멋없는 아빠가 되는 것 같아서라도 화내는 건 그만두게 됩니다. 조용히 아빠의 마음을 전달합니다.


'참을 인 세 번이면 호구'라는 유명한 말이 있지만, 상대가 아빠딸일 때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

끝맺음

우리 아이가 위험한 짓을 골라서 하고, 말썽만 부리고 내 말을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그 순간 감정에만 맡기지 말고, 마음을 말로 전달하는 것.


그것이 초보 아빠가 생각하는 훈육, 올바른 꾸짖음입니다.


육아 정말 어렵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혼냈다는 죄책감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수백 번 보내겠죠?

어려움 속에서도 좋은 육아를 하고 있는 세상 모든 엄마·아빠 함께 힘냅시다 : )

유아기 훈육 (1)